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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빚 갚을 능력 심사숙고해야" 판결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를 들어 법원이 빚을 갚을 능력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파산 신청을 기각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1부(주심 이홍훈)는 전남 담양군에 사는 김모(36)씨가 4300여만원의 빚을 면책해달라며 낸 파산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김씨는 장애인인 어머니를 부양하면서 배달원으로 일해 월 76만원 정도의 소득을 얻고 있다. 광주지법은 김씨의 이런 사정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고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변제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단지 젊고 건강하다는 등의 추상적·주관적인 사정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김씨가 빚을 일부 갚아야 하는 개인회생을 신청한다면 2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파산을 받아들여 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젊고 신체가 건강하고 액수가 적더라도 수입이 있으면 파산을 허용하지 않는 법원 일각의 관행을 바로잡는 판결로 풀이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일부 지방법원의 경우 판사들끼리 나이와 수입에 대한 자체기준을 정해 심리도 하지 않고 무조건 기각시킨다"며 "무책임하게 빚을 갚지 않으려고 하거나 허위신고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일부라도 빚을 갚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라는 취지에서 생긴 관행"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개인파산을 거의 예외 없이 다 들어주되 허위신고가 있을 경우 강력하게 형사처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처벌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에 파산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들이 도덕적 해이를 막고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성심껏 심리해야 하는 게 판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