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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째라 파산 줄고 착한 파산 늘었다.

감당하기 힘든 부채(負債)를 진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개인회생(개인파산) 제도에 질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으니 기존부채를 전액 탕감해달라는 '배째라식'개인파산 신청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법원의 명령에 따라 빚을 차근차근 갚을 것이니 채권추심의 공포에서 헤어나게 해달라는 개인회생 신청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4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재판장 고영한)에 따르면, 빚 갚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기존 채무를 탕감해달라면서 개인파산을 신청한 경우는 지난 2007년 5만1327건에서 지낸해 4만1200여건으로 1만건 이상 줄어들었다.

올해 상반기에도 지낸해 같은 기간 2만1000여건보다 20%가까이 줄어든 1만7717건에 불과했다. 반면 빚을 성실하게 갚겠다는 개인회생 신청은 2007년 5210건에서 지난해 5763건으로 늘어나더니, 올해 상반기엔 무려 60% 가까이 늘어난 4595건으로 급증했다.

실례로 일용직 근로자 이모(28)씨는 지난 3월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 백화점 행사요원, 마트 판매원 등으로도 일했던 이씨의 부채는 1500만원, 한달 수입 72만원인 이씨의 소득으로는 생활을 유지하기가 벅차기 때문에 빚을 전액 탕감받는 개인파산 대상도 될 수 있지만, 이씨는 "어떻게든 절약해서 매달 22만원씩은 꼬박꼬박 빚을 갚을테니 법원이 도와달라"며 개인회생 신청을 낸 것이다.

가수 지망생이던 이모(27)씨도 앨범을 내주겠다는 음반기획사에 속아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되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지만, 최근 월수입 100만원쯤 되는 새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개인회생 신청서를 내게 됐다.

두살 난 쌍둥이의 아버지인 그 역시 "매달 14만원씩 빚을 갚겠다. 철없던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대들보 역할을 충실히 해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착한파산'으로 불리는 개인회생 신청이 늘고 있는 것은 개인회생(개인파산)제도가 도입된 초기인 1997년 연이어 터진 IMF사태와 카드 대란 등이 대규모 실업사태를 동반했던 것과 달리, 최근엔 경제위기 상황이 아직 본격적인 고용대란까지는 번지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 제도 시행 12년이 지나면서 법원이 개인회생 신청자들은 적극지원해 주고 있는 반면, 빚을 못 갚겠다는 '배째라 파산'의 경우엔 종전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법원은 빚을 갚겠다는 의사가 확인된 개인회생 신청자가 실직이나 감봉 등 피치 못할 경우를 당했을 때는 나머지 채무를 면제하거나 줄여주는 유연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거꾸로 파산신청을 한 사람에겐 법원의 눈을 속이고 은닉해놓은 재산이 있는지 등을 철저히 잡아내기 위해 파산관재인 선임 등을 통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채무자들의 인식도 차츰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병현 고려대 법대 교수는 "개인파산제도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채무자들도 성의를 보여야 법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인식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고영한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은 "채권자들로부터 '저 사람은 나보다 더 잘 사는데 어떻게 채무를 면책해 줄 수 있느냐'는 항의를 듣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있다"면서도 "빚을 갚겠다는 사람은 확실하게 밀어주고, 빚을 지고도 전혀 못갚겠다는 얌체들에겐 최대한 깐깐하게 대할 것"이라고 말했다.